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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미독만권지실(未讀萬卷之室)

정근두 투데이N 칼럼 • • 읽는 시간 약 4분
원문 출처: 투데이N (Today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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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역일 때는, 전 세계에 가서 지낼 곳이 많은데 갈 시간이 없다고 늘 자랑하곤 했습니다. 그래서 자뻑이란 핀잔을 듣는 편입니다만, 정말 만나면 반가워하고 때론 부부침실까지도 내어주는 분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제 목회에서 은퇴를 했지만 에스라성경대학원대학교에 와서 봉사하기에 시간이 없기는 마찬가지입니다. 학교가 있는 경기도 고양에 올라가면 교직원숙소로 지은 <신관>이란 건물에 살지만, 방학이 되어 울산에 내려오면, 성도들의 사랑과 관심으로 마련된 집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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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그 집의 서재실 문인방 위에는 未讀萬卷之室(미독만권지실)이란 한자로 새겨진 서각이 붙어있습니다. 외삼촌이 유학을 마치고 돌아왔을 때 공부한 조카인 저에게 선물한 것입니다. 직역하면 읽지 못한 책이 만권이나 있는 방이라는 뜻이겠지만 의역을 하면 읽고 싶은 책이 만권이나 있는 방이라는 의미입니다. 40대 초반 처음 선물을 받았을 때와는 달리 나이가 들어 칠십 중반을 향해 갈수록 뜻이 새로와집니다. 다행히 울산의 제 서재는 넓지를 않아서 책장을 빈 벽면에 하나 더 만든다고 해도 600권 정도 들어갈 수 있을 겁니다. 하긴 未讀萬卷之室(미독만권지실)이란 서각이 걸린 방 말고도 책장이 있는 방이 있으니까 1200권은 이미 꽂혀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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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70대 중반에 접어든 저에게는 이제 새로운 책장문제가 아니라 이미 꽂혀있는 책들을 읽을 시간이 더 문제입니다. 새해에는 1주일에 500쪽의 책을 한 권씩 읽겠다고 호기를 부렸지만 첫 주간이 지나면서 한 달에 한 권으로 신속히 조정했습니다. 하지만 그 대단한 프로젝트 덕분에 읽기 시작한 책, <칭기스 칸, 잠든 유럽을 깨우다>는 비록 지금 150쪽 근방을 달리지만 1월말까지 특히 설연휴를 잘 활용하면 450쪽 책을 완독할 것 같습니다. 여느 은퇴자처럼 오로지 독서에만 집중할 수 있다면 벌써 끝을 내고도 남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자나 깨나 불조심, 앉으나 서나 학생모집”에다가 3월과 4월에 태백에 있는 목회자들을 위해서 <설교자를 위한 누가복음 특강>을 준비하는 일도 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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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 두 번,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그러니까 60분 강의 기준 하루 5강씩 총 10강으로 전부를 살펴야 합니다. 작년 봄에 두란노에서 누가복음 강해설교집 첫 권 <구원사의 서곡>이 나왔는데 이번 2월에는 둘째 권 <예수의 제자>가 나옵니다. 그러면 마지막 책만 남는 셈입니다. 문제는 책을 읽지 않는 새로운 세대인데다가 전집류는 더더욱 무서워하니, 작년에 계획대로 3권을 다 내지 못한 출판사의 고충도 느껴집니다. 이래저래 남은 날들에 비해서 읽고 싶은 책들은 많지만 자신의 처지를 알아야 하니 未讀萬卷之室(미독만권지실)이 아니라 未讀千之室(미독천권지실)로, 아니 겸손하게 未讀百卷之室(미독백권지실)이 더 좋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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