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0월 21일 (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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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가네 이야기

"말씀과 은혜, 그리고 가족의 소중한 삶의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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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러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김창선 예상 밖의 손님들 • • 읽는 시간 약 5분
키워드: #예상 밖의 손님들

갑자기 친정 아버지께서 입원을 하셨답니다. 작년부턴가 치매증세가 좀 있다고는 했지만 매일 돌봐준다는 노인복지관에 가셔서 친구분들이랑 운동도 하시고 점심도 잡숫고 하시니 크게 문제는 없나보다 했지요. 감기로 인해 열이 좀 오르고 배탈도 나셔서 입원을 하셨다는데 알고 보니, 노인 요양병원에 들어가신 것입니다. 대소변을 잘못 가리시기도 하는데 집에서는 누가 돌봐드릴 수도 없고 해서···사정이 그렇게 된 것입니다.

삽화

급할 것 까지는 없다지만 한 번 가서 뵈어야겠다 싶어 짬을 냈습니다. 워낙에 체구가 작은 분이 더 작아지셨습니다. 감정표현을 잘 하시지 않는 분이지만 무척 반가와 하시면서도 “나는 이러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며 그런 처지의 자신에 대해 못내 서운해 하셨습니다. 늘 올곧고 깔끔하셨던 분이십니다. 높은 연세에도 방에 먼지 하나 없이 깨끗하게 청소하시고 옷매무새도 가지런히 챙기시던 분이셨습니다. 그런데 대소변도 마음대로 가려지지 않고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아야 하니 내심 무척이나 자존심이 상하신 것 같습니다. 누구보다 반듯하게 살아오셨고 누구에게 폐 끼치는 것을 싫어하신 분이셨으니 더욱 그러실 것입니다.

“그러게 말입니다. 사람 일이 그리 마음대로 되는 게 아닌 모양입니다. 너무 부담 갖지 마세요.”라는 어정쩡한 대답만 하고 민망스러워 뭐라고 말씀을 드려야 할 지 난감해 하는데 동생이 들어와서 여쭈었습니다. “약은 드셨습니까?” “그래 먹었다.” 웬걸, 드셨나 하고 협탁 위를 살피니 아니나 다를까 점심 식사 후에 드셔야 할 약이 그대로 있네요.

아버지는 성품이 조용하시고 빈틈이 없으신 데다 정직하셔서 평생 공직에서 의 일을 잘 마치셨고 직장 동료나 후배들에게 ‘법 없어도 사시는 분’으로 존경을 받아오셨습니다. 하지만 옛날 분들이 다 그러셨던 것처럼 자녀들에게 사랑의 표현을 한다든지 격려의 말을 별로 하신 적이 없었습니다. 말하자면 속정을 드러내지 않으신 게지요. 그래서 저는 자라면서 아버지가 나를 사랑하시는 지를 몰랐습니다. 좀 엄하시고 왠지 모르게 거리감이 느껴져서 그렇기도 했겠지요. 그런데 내가 결혼하고 언젠가 친정에 갔다 나오는데 한참을 따라 나오시면서도 여전히 별 말씀은 없었지만 ‘아, 아빠가 나를 사랑하시는구나!’라는 느낌이 들었던 것을 기억합니다. 그렇게 철이 들고 나서야 자식을 자랑스러워 하시며 믿어주시는 아버지의 마음을 엿볼 수 있었지요.

생각해보면 아버지가 이해가 되기도 합니다. 아버지는 11살에 어머니를 여의시고 곧바로 도시 농림학교로 유학(?)을 가셨으니 당신이 부모의 사랑을 잘 모르고 자라셨던 게지요. 그러니 딸자식이 사랑스러워도 어떻게 사랑 표현을 하는 것인지 아버지의 역할이 어떤 것인지 본 적도 없고 배울 수 있는 기회도 없었지요. 그렇다고 학교에서 그런 것을 가르쳐 주는 것도 아니잖아요. 말하자면 속 깊은 정을 내색하지도 않았고 할 줄도 모르셨던 게지요. 아버지를 많이 닮은 딸인데도 아버지를 이해하는 데는 시간이 꽤 걸렸던 것 같습니다.

이제는 팔십 중반을 넘기시고 노쇠해지신 아버지를 뵈면서 안쓰럽기도 하고 평생 식구들을 위해 애쓰신 노고를 갚아드리지도 못하는 것이 죄송하기도 했습니다. 함께 기도를 드리고 나면 눈물을 글썽이시며 “고맙다.”라며 웬일로 마음을 표현하시기도 합니다. 평생토록 위장병으로 앓는 아내 곁에서 한 번도 싫은 내색하지 않고 간호하시며 묵묵히, 표현하지 않는 것을 사나이의 덕으로 알고 사셨던 분입니다. 일찍이 아내를 천국에 보내시고 20년 가까이 지금도 그저 그러려니, 짐작만 하고 사시니 어찌 보면 매정해 보이기도 하지만 그 속정을 다 헤아릴 수가 없어서 안타까울 뿐입니다.

“아버지, 이제는 아들, 딸들에게 섭섭한 마음도 표현을 하시고 이런 저런 얘기도 좀 나누시면 좋겠어요. 그래야 함께 사는 식구들도 더 편안하게 대할 수 있을 테니 말입니다. 그리고 이제는 얼마 있지 않아 떠나게 될 세상일들일랑 훌훌 털어버리시고 천국소망으로 사시기 바랍니다. 아버지, 고맙습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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