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0월 21일 (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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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가네 이야기

"말씀과 은혜, 그리고 가족의 소중한 삶의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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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로, 서울로

정근두 투데이N 칼럼 • • 읽는 시간 약 5분
원문 출처: 투데이N (Today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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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 즈음에 서울로, 서울로 불던 바람 덕분에, 누님 셋이 서울에 살고 있었기에, 국민학교를 졸업하자 중학교를 서울로 보내기로 아버지는 결정하셨습니다. “말은 제주로, 사람은 서울로!” 시험장에서 내가 서울말을 못 알아 들을까봐, 서울말 듣기 훈련을 위해 둘째 누님이 나를 찐빵 집으로 데려갔습니다. 그런데 사주신 빵만 먹고는 일어서는 동생을 안타까워 하셨던 기억이 남아 있습니다. 시골에서 공부를 잘한다는 소리를 들었지만, 서울입성은 쉽지를 않았습니다. 1차 용산중학교, 2차 청운중학교는 나를 반기지 않아서, 그 때 줄만 서면 가는 미아리 고개 넘어 산비탈에 있는 서라벌중학교에 들어가서, 한 동안 잘 다니다가 2학년 5월쯤 낙향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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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에 돌아와서 바로 전학을 시도했지만 자리가 없다고 하는 바람에 “그럼 내년에 …하자”면서 쿨하게 돌아오신 아버지 덕분에, 참으로 행복한 1년을 동네 조무래기들과 함께 보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러다가 1년 후에 그 학교에 전학해서 결국 중학교를 졸업했지만 그 때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셨고, 가정형편이 어려워서, 어떤 협동조합에 “급사”로 다니다가, 그해 연말에 다시 서울을 향한 재 도전을 했습니다. 영등포에 있는 종합학원에 한 달을 다니며 고등학교 시험 준비를 했습니다. 성남고등학교나 중대부속고등학교를 기웃거리면서 계산을 해 보니 입학금, 등록금, 교복, 책값을 낼 돈은 겨우 되지만, 그 다음부터는 고학을 해야 되는데, 할 수 있는 일은 새벽에 신문을 돌리는 일이 전부이던 시대였습니다. 그건 새벽잠이 많은 나에게는 쥐약과 같았습니다. 그래서 결국 청진동에 있던 동광고시학원의 문을 두드렸고, 석달도 채 다니지 않고 검정고시를 쳤더니, 6과목은 합격했는데 국, 영, 수는 떨어졌고, 그 해 여름 다시 낙향을 하고 말았습니다. 그후 다시 시험을 치르고 통과를 했지만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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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저래 고려신학교 대학부를 거쳐서 신학대학원을 졸업하고 유학할 기회가 찾아와서,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8년 동안 공부했고, 귀국하면서 세 번째 서울 입성시도를 했습니다. 86년 말에 장승배기에서 두레교회를, 2년 여 뒤에는 정릉에서 탄포리교회를 분립해서 개척경험을 두 차례 한 셈입니다. 장승백이는 중학교 때 살았던 신길동에서 멀지 않고, 정릉은 학교를 다닌 미아리에서 멀지 않았으니, 그렇게 낯선 곳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경험조차도 헛되이 보시지 않고 재활용하시는 분인가 봅니다. 스무 명이 채 되지 않는 장승배기 개척교회는, 개척 2년을 넘어가면서 공간 20평에 150~160명으로 자랐으니 대안을 찾아 정릉으로 분립개척을 하게 된 것입니다. 서로 불화해서가 아니라 우리 교회와 같은 좋은 신앙공동체가 강북에도 하나 있었으면 하는 순수한 마음에서 출발했습니다. 거기서 7년 가까이 사역하다가 울산교회의 부름을 받아 24년 동안 사역하고 은퇴를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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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하여 저의 네 번째 수도권 진입시도는 에스라성경대학원대학교의 부름 때문입니다. 은퇴를 몇 년 앞두고 설립자이자 명예이사장께서 목회를 은퇴하면 딱 1년만 쉬고 학교로 오라는 제안을 했습니다. 그러면서 “그런데 아직 기도를 해 본 것은 아닙니다”라고 하기에 별 생각없이 지냈고, 막상 때가 되었을 때는 “하나님, 왜 제가 가서 뒤치다꺼리를 한다고 4년이나 썩어야 합니까? 가고 싶지 않습니다 “ 그 생각을 하는 동시에 생애 처음으로 느껴보는,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는 두려움이 엄습하기에 바로 무릎을 꿇었습니다. 용서의 무릎을 꿇고, 여전히 이해는 되지 않지만,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기로 기도했습니다. 기도의 자리에서 일어나는 순간 물으셨습니다. “4년 썩기 싫다고? 그 4년이 네 4년이냐?”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하루 아침 일어나는 것도 우리 뜻대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고양으로 올라온지 한 달도 되지 않아, 설립자가 하늘의 부름을 받았을 때, 안가겠다고 닭발을 지긴 것이 부끄러웠습니다. 마침내 수도권 진입해서 3년이 다 되어가는 요즈음, 주말에 한 번씩 북한산을 오르거나 한양도성을 걷기도 하고, 100킬로를 달려도, 멀리 또는 가깝게 북한산을 바라보면서 라이딩하니, 이 또한 수도권 진입 덕분에 주어진 선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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