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0월 21일 (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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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가네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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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역이 필요한 우리 어머니

김창선 예상 밖의 손님들 • • 읽는 시간 약 5분
키워드: #예상 밖의 손님들

통역이 필요한 우리 어머니

삽화

이번 여름휴가에는 파리에 있는 며느리와 손녀들이 한국에 들어온다고 해서 연세가 여든 여덟이신 어머님과 서울에 있는 둘째 아들까지 불러서 온 식구가 제주도에서 시간을 보냈습니다.부산에서 밤새도록 배를 타는 일이 조금은 염려가 되기도 했습니다. 어머님이 멀미를 안 하실는지, 파도가 많으면 안되는데··· 그래도 가고 오는 뱃길이 잔잔했고 어머님도 잘 주무셔서 감사했습니다. “너우가 심한 곳이 한두 군데는 있었지만 편안하게 잘 왔다.”고 하십니다. 걸음을 많이 못 걸으시는 아흔이 가까운 어머님이 좋아하실 곳이 어딘지, 이제 막 유치원과 학교에 들어간 손녀들이 즐길 수 있는 프로그램이 무엇일까 맞추어 일정을 짜느라 고심하기도 했고 매끼 밥상을 차리느라 바쁘기도 했지만 함께 즐거운 휴가를 보낼 수 있었습니다.

어머님이 증손녀를 보시고 “가영아 니는 니 나이 여덟 살 먹었고, 나는 넘의 나이 여덟 살 먹었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어머님은 팔십이 넘으면 남의 나이를 먹는다고 생각하십니다. 남해 쪽 사투리를 그대로 쓰시는 바람에 젊은 사람들과 말씀하실 때는 통역이 필요할 때가 자주 있습니다. “나는 갱본이 있어야 좋다.”라고 하시면 서울이 고향인 손부는 제 얼굴을 쳐다봅니다. 통역이 필요하다는 말입니다. ‘갱본’은 ‘바닷가’라는 뜻입니다. 평생을 바다를 바라보며 사셨고 그래서 바다를 무척이나 좋아하십니다.

여행 중에 차로 움직이는 길에 늘어선 분홍빛 백일홍이 참 예쁘기도 합니다. 어머님은 “옛말에 ‘백일홍 필 때는 친정에 가지 말라’고 했다.”고 하십니다. 오월에 보리를 거둬 그나마도 보리밥이라도 먹었는데 그것조차 얼마가 되지 않아 백일홍 피는 칠 팔월이면 바닥이 나고 말아 양식이 다 떨어졌으니 하는 말입니다. 다녀오는 길에 어머님을 고향에 모셔드리려고 하동 쪽으로 가니 ‘전어축제’를 한다고 현수막이 나붙었습니다. 어머님이 늘 하시던 말씀, “가을전어가 잡힐 때는 집 나갔던 며느리도 돌아온다.”는 말대로 전어는 가을부터 연말까지 가 기름지고 맛있다는 말이지만 초가을 전어도 회로 먹기에 좋았습니다.

진교에서 남해대교 쪽으로 오는 국도변에 벚꽃나무가 터널을 이루고 있습니다. 벚꽃 철이면 장관이 되겠지요. “사꾸라 꽃이 발랑발랑 필 때라야 바지락이 맛있는 법이다.”라는 어머님 말씀도 생각이 납니다. 막내 동생이 우리 집에 잠깐 기거했을 때에 제가 동생을 잘 챙겨주지 못 한다고 하시는 말씀이 “누부 집에 가면 횡소 밟은 밥을 준다는데···.” 먹을 것이 귀했던 시절에 시집간 누나 집에 가면 다른 사람이 눈치 챌새라 밥을 황소가 밟은 것처럼 꾹꾹 눌러서 퍼준다는 뜻입니다.

어머님의 어록은 참 재미있습니다. 들어보면 지혜가 빼곡히 들어있습니다. 학교도 조금밖에 못 다니셨고 성경 말고는 읽는 책도 없을 뿐만 아니라 인터넷은 물론이고 무슨 정보지나 수첩도 하나 없지만 그냥 신앙생활을 하시면서, 자연과 더불어 사시면서 터득한 지혜들입니다. 저보고 그러십니다. “사모는 마음이 노량 앞바다 같아야 된다. 사람들이 온갖 쓰레기들을 바다에 다 버려도 한 번 물이 들고 나면 바다는 다시 깨끗해지거든.” 한 번은 채전을 만든다고 뿌리가 깊이 박힌 나무를 파내느라 진땀을 흘리시면서 하시는 말씀, “아마도 우리 죄의 뿌리가 이렇게 깊을 꺼다. 하나님 은혜로 죄사함 받았으니 참 감사하지.”

우리가 생일을 양력으로 계산을 하면 “너그들 생일은 와 왔다 갔다 하노?” 하십니다. 어머님은 음력을 기준으로 다 계산을 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조금’ 때라 고기가 잘 잡히겠다.”고 하시기도 하고 “바람이 부는 것이 보름이 다 됐나보다.”라고도 하십니다. 책을 보지 않고도 채소밭을 가꾸고 농사 짓는 일에 누구보다 뛰어나십니다. 아프리카에 있을 때 부시맨 자매가 백인 선교사님에게 했던 말이 생각이 납니다. “당신들은 책을 보고 하지만 우리는 머리로 하지요.” 요즈음 우리는 정보가 넘쳐나는 시대에 살고 있고 많은 지식을 갖고 있는 것처럼 생각하지만 어쩌면 점점 자연미와 인간미를 잃어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표준말을 쓰게 된 것이 좋기도 하지만 획일화된 문화 속에서 개성을 상실하는 것은 아닌지 물어보고 싶어집니다. 때론 통역이 필요하지만 새겨들으면 오늘날 쉽게 접할 수 없는 지혜를 맛보게 된, 어머니와 함께 한 가슴 훈훈한 여름휴가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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