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0월 21일 (수) |

Jungs' Story · Family Archive

정가네 이야기

"말씀과 은혜, 그리고 가족의 소중한 삶의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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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의 박물관

김창선 예상 밖의 손님들 • • 읽는 시간 약 5분
키워드: #예상 밖의 손님들

에디스 쉐이퍼 여사가「가정이란 무엇인가」라는 책에서“가정은 추억의 박물관이다.”라고 말합니다. 박물관이란 보존할만한 가치가 있는 것들을 모아서 보존하는 곳입니다. 미술박물관, 자연사박물관, 해상박물관 등이 있지요. 가정이란 추억의 박물관 역시 잊히지 않는 삶의 추억들이 모아지고 보존되는 곳입니다. 제가 서울에 있을 때 중학교에서 집단 상담을 한동안 했었는데, 프로그램 가운데 ‘살아오면서 가장 슬펐던 일, 가장 기뻤던 일들’을 나누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거의 빠짐없이 모든 아이들이 가족관계 가운데에서 있었던 일들을 말해서 인상적이기도 했습니다. 그만큼 가족에 관한 기억들이 우리에게는 소중한 추억이 되니 말입니다.

삽화

대구에 사는 큰 동생의 홈페이지에는 가족게시판이 있어서 우리 오남매가 수시로 들락거리며 서로 교제를 나눕니다. 얼마 전에는 동생이 렌더링 프로그램으로 옛날 우리가 살던 봉산동 집을 그리는데 아예 집을 짓다시피 하면서 여러 가지 옛 추억들이 속속 올라오고 있지요. 기억을 따라 그리는 것이라 잘못된 정보가 있으면 동생들이 너도나도 수정을 해줘가면서 말입니다. 큰동생이 그 집에 대해 올린 글을 읽어보면서 추억을 되살려봅니다.

봉산동에 있던 그 집에는 변솟간 옆에 손바닥만한 정원이 있고 거기 백일홍과 금잔화, 맨드라미가 몇 포기 심어져 있다. 그리고 그 곁에 짠내와 퀴퀴한 냄새를 풍기는 큼지막한 간장독들이 여럿 있다. 간장을 새로 담기 전 빈 독 속에 상체를 들이밀고 말을 건네면 거대한 동굴에서 들려오는 듯한 메아리가 반향이 되어오곤 한다. 그 곁에는 수돗가가 있고 수돗가 앞에는 철봉이 있다. 철봉대는 중학교 입시 체력장에서 턱걸이 점수가 한없이 낮은 나를 위해 턱걸이 연습하라고 아버지가 만들어주신 것이다. 그리고 그 곁에 부엌이 있고, 그 곁으로 건넌방, 마루, 안방이 이어지고 왼쪽으로 기역자로 꺾어진 곳에 문간방이 있다.

그리고 대문 곁 담벼락 아래에는 좁은 마당을 반쯤이나 차지한 길쭉한 꽃밭이 있다. 유난히 새와 꽃을 좋아하시던 어머니의 꽃밭에는 한겨울을 제외하고는 내내 꽃이 지는 날이 없었다. 담벼락을 휘감은 줄장미와 여자(또는 여주라고도 한다. 넝쿨 식물로 열매가 익으면 달짝지근한 맛이 나는 속을 먹는다), 왼쪽 문 곁에 요염한 자태를 뽐내는 시원한 잎의 홍초 두어 포기, 그리고 맨드라미, 분꽃, 유도화, 배롱나무라고도 불리는 백일홍, 석류, 옥잠화, 접시꽃, 장미, 봉숭아와 채송화들이 사시사철 형형색색의 꽃들을 피워냈다. 그러나 어머니는 목련과 작약을 가꿀 수 없어 늘 그 부분을 아쉬워 하셨다. 작약이 으뜸인데…. 그러나 그건 공무원 하시는 아버지의 박봉으로는 살 수 없는 너무 비싼 나무였다.

우리는 그 집에서 오륙년쯤을 살았다. 거기서 늦둥이로 태어난 막내 동생이 다섯 살쯤 되던 해에 이사를 갔으니. 그 뒤 지금은 남구청으로 바뀐 봉덕동의 대성공고 뒤로, 공무원 아파트로 우리는 이사를 다녔다. 갈수록 가세는 기울면서 말이다. 그러니까 그 봉산동 집에서 우리는 가장 행복했던 어린 시절을 보냈다. 가을이 문턱에 다가오면 바글바글하던 채송화 씨앗을 받아 종이 봉지에 고이 접어 보관하던 기억, 여주가 익으면 그걸 먼저 따먹으려고 기회만 엿보며 때로는 마지막 여주를 동생들에게 빼앗겨 골통을 부리던 기억, 봉숭아꽃을 이겨 백반과 함께 봉숭아 이파리로 손톱에 감아 하룻밤을 자고 나면 누나와 어머니와 여동생의 손톱은 고운 주홍빛으로 물들던 그 주홍 빛깔의 기억들. 고만 고만한 동네 꼬마들이 구슬치기며 잣치기를 하며 헤헤거리다가 어느 순간 원수처럼 싸우고는 다음날 또 언제 그랬냐는 듯 “머시기야 놀자.” 하며 문 앞을 기웃거리고, 그러면 우리는 친구가 어쩌는지 보려고 못 들은 척 한참을 꾸물대다가 마지못한 듯 문을 따주던 그 새콤한 기억들이 몸을 간지른다.

가난했지만 그 아름답고 행복했던 시절들을 떠올리면 슬그머니 입가에 미소가 피어나지요. 이제 KTX덕분에 서울길이 두 시간 남짓밖에 걸리지 않아 무척 빨라지기도 또 편리해지기도 했지만 고향이나 어린 시절의 추억들은 고스란히 책갈피 단풍나무 잎처럼 예쁘게 간직되고 있나봅니다. 그래서 역시 가정은 추억의 박물관입니다. 훗날 그 박물관에 반짝반짝 빛날 추억들이 지금도 수집되고 있습니다. 아시죠? 박물관이라고 모든 것을 다 보관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모아지는 소장품이 아름다운 것, 가치 있는 것, 기념할 만한 것들이면 더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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