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0월 21일 (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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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세례를 받아야 할까요?”

정근두 투데이N 칼럼 • • 읽는 시간 약 5분
원문 출처: 투데이N (Today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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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교회에서 한 분이 저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하였습니다. “최근 매일성경 묵상본문인 사도행전 8장을 보면서, 추가적인 성령세례의 필요성을 느꼈습니다. 나도 “별도로 성령세례를 받아야 할까요?” 이에 대하여 제가 현장에서 구두로 답변을 한 후 아래와 같은 내용을 정리하여 다시 보냈습니다. 저 역시 아직 배워가고 있는 중이기 때문에 이런 내용을 공유하는 것이 조심스럽지만, 참조하세요. 감사합니다.>라고 하면서 존 스토트의 입장을 잘 요약한 결론을 내렸습니다. <결론 : 예수님을 믿으면 누구나 성령세례를 받게 됩니다. 추가적인 성령세례는 없습니다. 다만 성령충만을 위하여서는 계속 깨어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저 역시 이에 대하여 아직 배워가고 있는 중이기 때문에, 이 내용이 확정적인 것이라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우리는 열린 마음으로 계속 성경적인 가르침에 귀를 기울여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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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세례>에 관한 가르침이라고 하면 존 스토트의 입장과 로이드 존스의 입장으로 크게 둘로 나누어집니다. 앞 문단에서 존 스토트의 입장이 요약되어 있으므로 여기서는 로이드 존스의 논지를 따라 성경의 가르침을 정리해 보려고 합니다. 오늘 우리의 혼란은 <성령세례>라는 표현 때문에 시작한 것 같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성령세례”라는 표현은 성경에 나오지 않습니다. 사실확인을 위해서 정확한 표현을 살펴봅시다. 네 복음서에 나오는 세례요한의 예수님의 사역에 대한 언급과 사도행전의 예수님의 약속을 재확인하는 두번의 언급이 있습니다. 그것을 제외하고는 고린도 전서 12장 13절, “우리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다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 또 다 한 성령을 마시게 하셨느니라” “For we were all baptized by one Spirit so as to form one body …”(NIV)라는 구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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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세례요한의 사역인 물세례와 대조한 예수님의 사역으로서의 성령 세례에 대한 복음서의 기록을 살펴봅시다. “요한이 모든 사람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나는 물로 너희에게 세례를 베풀거니와 나보다 능력이 많으신 이가 오시나니 나는 그의 신발끈을 풀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베푸실 것이요”(눅 3:16) 마태 역시 “성령과 불로”(마 3:12), 요한은 “성령으로 세례를 베푸시는 이”(요 1:33), 마가는 “그는 너희에게 성령으로 세례를 베푸시리라” “I baptize you with water, but he will baptize you with the Holy Spirit.”(막 1:8 개역개정, NIV)고 간결하게 기록합니다. 그리고 사도행전에 나오는 두 번의 언급도 역시 세례요한의 사역과 대조한 예수님의 약속으로서의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는 말씀입니다.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하셨느니라”(행 1:5) “내가 주의 말씀에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하신 것이 생각났노라”(행 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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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서의 “성령으로 세례를 베푸시리라”는 것과 행전의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는 것은 모두 사역의 주체가 예수님입니다. 반면에 고린도전서의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았다’는 표현은 사역의 주체가 성령이십니다. 전자는 ” he will baptize you with the Holy Spirit.” 라면 고린도전서의 가르침은 “we were all baptized by one Spirit”으로 되어 있는 사실을 직시하십시오. 후자는 우리를 그리스도의 몸에 연합시키는 비경험적 사건이라면 전자의 가르침들은 모두 우리에게 능력이 임하는, 때로는 방언과 함께, 경험적인 사건입니다(행전 2:. 그러면 왜 서신서에서는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라”는 명령이 없는가 하는 점입니다. 거기에 대한 대답은 히브리서가 기록된 시기까지, 즉 제2세대 그리스도인들까지 강력한 성령의 사건 속에 있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도 표적들과 기사들과 여러 가지 능력과 및 자기의 뜻을 따라 성령이 나누어 주신 것으로써 그들과 함께 증언하셨느니라” 그러므로 서신서의 가르침은 행전의 역사적 배경속에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하고 싶습니다.

정리하면, 성령께서 우리를 주님의 몸에 연합시키는 중생세례와 예수님이 성도들에게 사역을 감당하기 위해 주시는 성령의 능력세례를 서로 구분할 때 <성령세례>란 표현이 일으킨 혼란을 끝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예수님이 선물로 주시는 ‘성령세례’의 약속은 우리로 하여금 능력있는 증인이 되기 위해서 사모해야 하고 “이 약속은 너희와 너희 자녀와 모든 먼데 사람 곧 주 우리 하나님이 얼마든지 부르시는 자들에게 하신 것이라”(행 3:39)는 도전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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